정부재정

잘생기고 부자인데 착하기까지 한 배우자를 구하는 일은 예쁘고 말 잘 듣고 건강한 반려견 찾기만큼 어렵다. 그래도 전생에 복을 쌓았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착하고 유능한’ 정부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성군 소리를 듣는 세종대왕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라 돌아가는 모습에 실망한 백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 기준으로 좋은 정부란 평가를 듣는 스웨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능력을 지닌 집권자라도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행복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어차피 현실에서 최선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니 완벽한 배우자나 반려견이 내 곁에 없다 해도 속 쓰려 할 필요 없다. 아쉬운 대로 잘 다듬으면 차선(second best)은 가질 수 있다. 남편과 강아지는 길들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다르다. 아예 반란이나 혁명으로 뒤집을 수는 있어도 시민이 정부를 착하게 길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경제이론에 나오는 정부는 자비롭고 순수하며 오로지 시민의 후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설사 특정 정권의 임기가 끝나도 다음 정권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생명은 무한대라고 가정하기도 한다. 물론 이론은 이론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경제학의 추상화(abstraction)가 도를 넘어가면서 수학 모형 속에 갇혀 사는 경제학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장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으며 스스로 그 속으로 들어간 앵무새라는 것을 모른다. 

반면 현실적인 정부 모습을 그리는 정치경제 이론들도 많다. 정치인은 득표에, 관료들은 예산에 관심을 둔다고 가정하는 모형들도 주류 경제학이 발전시킨 세련된 방법론은 그대로 사용한다. 앵무새가 편견이 있다고 통째로 외면하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을 낳을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심리적 요소를 강조한다 해서 인간의 합리성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경제 모형처럼 좀 더 세상을 넓게 보자는 것뿐이다. 착한 정부는 없다는 말이 정부는 다 부패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구성원인 정치인이나 관료 역시 다른 직장인처럼 나름의 직업윤리가 있을 것이다. 사실 유권자 표심에 관심 없는 정치인이 어디에 있으며, 자기 부처 예산 늘리기에 관심 없는 의욕 상실 공무원에게 무슨 창의적인 정책을 기대하겠는가. 기업인이 돈 벌려고 애쓰는 것처럼 정부 구성원들도 사무실 액자에 적힌 추상적 가치보다는 득표나 예산 같은 현실적 목표가 더 마음에 다가올 것이다. 물론 사기 치는 장사치가 있듯이 부패한 정치꾼이나 탐관오리도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민주 국가라면 부패한 구성원을 건져낼 그물이 존재한다. 그물코가 얼마나 촘촘한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문제는 부패한 세력일수록 스스로 그물 관리를 하려 든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정치에 휘말리는 나라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집권 정부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정권의 명목적 임기와 실질적 임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교과서 속의 정부는 임기가 따로 없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는 사회 후생을 극대화하기 위한 착한 존재이다. 현실에서는 정권이 바뀌며 정책 기조나 내용이 확 바뀔 수 있다. 물론 생각 있는 집권자라면 다음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 장래를 생각하며 정책을 구상할 것이다. 명목적 임기에 집착하지 않고 멀리 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통일 후 흔들리던 독일을 살리려 인기 없는 개혁을 추진했다 실각한 슈뢰더 총리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리더로 불린다. 그 뒤를 이은 메르켈은 적장의 노력을 존중하며 이어나가 오늘의 강한 독일을 만들었다.  

경제 규모로만 보면 세계 10강에 드는 대한민국은 어떨까. 대통령이 임기 마치면 족족 감옥으로 가는 나라에서 정부 정책의 지속성을 크게 기대하긴 무리다. 같은 정책인데도 악착같이 이전 정권의 색깔을 지우려 이름부터 바꾸거나 자신의 임기가 세상의 끝이라도 된 듯 ‘대못’을 박는 것은 익숙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완벽하지는 않다 해도 ‘정권의 임기는 짧아도 정부의 임기는 영원하다’라는 기본적인 국가관을 지닌 세력이 집권해야 나라가 덜 시끄럽다. 때로는 새장에 갇힌 앵무새가 반복하는 ‘착한 정부’라는 말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정부라도 실력이 있다면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집권당의 이념이 나와 맞지 않고, 권력 주변에 썩은 냄새가 다소 나더라도 내가 낸 세금이 아깝지 않게 좋은 서비스를 돌려주는 정부라면 참아주는 유권자가 많을 것이다. 유능한 정부는 얼마든지 현실에서 가능하다. 돈 잘 버는 아내나 오줌 잘 가리는 강아지처럼.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두부 자르듯 선명하지 않다. 편견은 하늘을 찌르는데 실력은 지하로 향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찾기 어렵지 않다. 반면 착한 의도의 정부는 시간이 걸려도 유능한 정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주인 잘 따르는 강아지가 오줌 가리는 법을 빨리 배우는 것처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잘 섬기는 정부가 궁극에는 좋은 정책을 많이 만들어낼 것이다. 자기가 나라 주인이라 생각하는 위정자들이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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